종교의 커다란 역할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점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 가에 의해 세계의 종교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많은 종교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거나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에 반해 어떤 종교는 믿는 것만으로 신에게 인정받아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구원받기 위해서 유일한 조건은 신앙에 있다고 시종일관 가르치고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_9).10)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5).
이 은혜의 말씀은 자신의 약함이나 죄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펄쩍 뛸 정도로 기쁜 소식이지만, 자신은 그다지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은 뻔뻔스럽다’라고 비판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행위를 강조하는 종교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컬트교단의 지도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행위=구원’을 설파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안성맞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결국 컬트에 있어서, 조직의 이익이나 확대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신자를 움직이게 할까가 영원한 과제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날쌘 방법은 ‘활동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가르치는 것이다.11)
게다가 ‘하나님을 위한 봉사다’라고 하여 열심히 활동하는 신자의 존재만큼, 조직의 선전이 되는 것은 없다. 종교를 갈구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우선 그 종교에 입신한 사람을 본다. 그리고 거기서 ‘열심이기 때문에 올바를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봉사년도보고”(전도보고)를 보고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에 관심을 갖거나 강한 확신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시 독일의 여호와의 증인 이 가혹한 박해를 견디고 신앙을 지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조직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조직임에 틀림없다’라고납득하는 사람도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최근 급성장을 이루면서 제자훈련이라는 훈련방식이 문제시되는 교단도, 그 활발한 전도와 열심인 신자훈련 프로그램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처음 예배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도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몇 명의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어깨동무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한다. 매일 반드시 누군가 간증을 하도록 지도를 받는다. 자신의 교회의 미적지근함에 실망한 기독교인이 이 그룹에 꽤 참가한다. 아마도 그 ‘열심’이 최대의 매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