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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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6어떤 30대의 주부로부터 상담의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해진 상황을 듣고 가슴이 저려왔다. 주부의 이야기에 의하면 최근 남편이 어떤 종교단체에 다니게 된 후, 다른 사람과 같은 인격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다. 보통의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새벽과 밤의 집회참가나 ‘봉사’에 전력을 쏟다보니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걱정을 하게 된 주부가 “다른 조용한 교회로 옮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깐, 남편은 가출을 하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분간 자신의 종교활동을 인정하고 종교단체로 와주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혼했으면 한다”라고 남편은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후 부인과 두 명의 자식을 위해 생활비를 비롯한 전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가슴속으로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관계하는 단체에 대해서 상세하게 물어보니, 십자가가 걸려있는 기독교의 교회라고 했다. 자칭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목사가 있고 성서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목사가 신도를 위해 기도하면 신도가 쓰러지고 병 고침을 받는다고 한다. 어느 날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있던 남편이 인터넷을 통해 교회를 알게되어 구원을 찾아서 그 교회를 찾아가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로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에 계속 있는 한 당신은 안전하겠지만, 교회로부터 떨어지게 되면 망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놀란 것은 찾아간 그날 바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자’의 말에는 보통이 아닌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샐러리맨이 간단히 설득되어 가족을 버리게 될 정도의 열심신자가 된 것은 비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또한 최근 ‘목사로부터 폭력을 당했습니다’ 라는 기독교인으로부터의 연락이 자주 저자에게 온다.
‘목사가 때렸습니다’, ‘봉으로 머리를 얻어맞았습니다’, ‘목사님은 두 살 짜리 아기에게 “너무 천천히 먹는다”라고 화를 내었고, 목사님은 본보기로 그 아기를 깜깜한 닭장에 가두게 되어 아기는 공포심에 절규를 하였습니다’, ‘임신하고 있을 때 몸이 좋지 않아서 “안정하지 않으면유산이 될 수도 있다”라고 의사가 충고하였기 때문에 교회의 봉사를 쉬려고 하면, 목사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 나오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쳤듯이 당신도 배 안에서 자라는 생명을 주님께 바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몸은 점점 안 좋게 되고 결국 태아가 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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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극의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인의 식별력의 상실에 있다. 컬트집단의 교묘한 테크닉을 간파할 수가 없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신앙을 갖고 있는 젊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립보서 1:9_10)
‘식별력’이란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올바르지 않은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를 분별하는 힘이다. 이 식별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고 원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다. 또한 여러 가지 인생경험, 성서연구에 의해 갖게 될 수 있지만(히브리서 5:14참조), 식별력을 갖고있는 사람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믿지 않고 주의 깊게 생각한 후 자기의 판단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하나님의 예언자’, 또는 ‘목사’의 권위를 주장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미 2002년 5월 일본의 ‘생명의 말씀사’에서 “‘신앙’이라는 이름의 학대”라는 책이 출판되어 기독교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실태와 , 문제의 원인이 된 교회의 체질이 검증되었다.
본서의 목적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감각 (히브리서 5:14) 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본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기독교인은 쉽게 컬트교단의 교묘한 마인드 컨트롤의 수법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컬트화되어버린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욱이 본서를 통하여 컬트적 수법을 이용하는 것을 그만두고 성경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교회가 한 곳이라도 있길 바라마지 않는다.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쓰기를 원하였지만 여러 가지 궁리도 하였다. 첫 번째로는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은 채 본서를 사용하여 목사님이나 교회를 공격하여 평소의 원한을 풀려고 할 신도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여기서 독자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 본서의 내용과 꼭 들어맞다고 생각되는 목사님이나 교회가 있는 경우,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기도하며 마음의 아픔을 기억하며 셈과야벳의 정신으로(창세기 9:20_23참조)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신중하게 행동하였으면 한다.
두 번째 근심으로서는 ‘같은 기독교인을 심판한다는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독교인은 사람을 심판하여서는 안 된다(마태복음7:1). 그러나 주님은 형제가 죄를 범했을 경우, 그 죄를 지적하도록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8:15_17). 이것은 심판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심판이란 ‘당신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사람의 인격을 평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거짓말을 했을 경우어른이 어린이에 대해 ‘너는 거짓말을 했다’라고 어린이에게 죄를 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심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너는 거짓말쟁이다’라고말해버리면 그것은 어린이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을 찍고 심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본서의 목적은, 사람을 심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건전한 교회형성과 일본의 복음화를 막고있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더욱이 본서의 내용에 불만을 품게 될 목사님들과의 교제가 끊길지 모른다는 걱정도 된다.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본서에서 다루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같이 활동하고 싶다. 또한 ‘우리 교회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든지‘나를 중상하는 것은 아니지?’등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단이다’2)라고 확실히 기독교계 가운데에서 인식된 단체 이외에는 본서에서는 교회명(또는 단체명)을 밝히지 않기로 한다.
마지막 걱정으로서 필자와 필자의 가족을 향한 공격이 예상된다. 이것은 20년 전에 이단(컬트)문제에 몰두하게 될 때부터 각오하고 있던 것이며커다란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인의 기도로 지켜져 왔고 지탱되어 온 것과 같이 지금부터도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의 영적 지원을 바라마지 않는다.
본서를 내면서 이상과 같은 걱정 및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출판을 결정한 것은 상처받은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기때문이다. ‘치유를 위하여, 교회의 문을 두드렸더니,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라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누가 생각해도 있어서는 안돼는 이야기이다. 본서가 주님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지기를 기도하며 내 손을 주님께 맡긴다.